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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캘리포니아의 일상/라이프 스토리

닉슨 대통령 박물관(Nixon Presidential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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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xon Presidential Library ]


국 제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인다. 그를 떠올리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생각나고, 권력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 했던 대통령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해서 이후에 수많은 배후설들이 등장했고, 닉슨의 결백도 주장되곤 했지만, 대체로 그의 공적에 비해 평가는 후하지 못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 자리한 요바린다라는 작은 도시에선 사뭇 다르다. 이곳은 바로 그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 토박이들은 미국 정치의 변방인 캘리포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미국의 대통령까지 오른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의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더라도, 그의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선 환영 받는 분위기와 비슷하게 다가온다.

 

닉슨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은 닉슨을 기리는 도서관을 짓고 박물관을 열었다. 그리고 언론에 부각되지 않은 그의 공적과 대통령으로서의 활동 등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다. 닉슨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이나, 1970년 냉전 시대에 세계 지도자들의 평화 노력 등을 알고자 한다면 이곳을 들러보는 것은 산교육의 하나가 되리라 본다.


닉슨 대통령 박물관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을 기준, 자가운전으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이들과 한번 방문하기에 부담 없는 거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60번 프리웨이 이스트 방향을 타고 30여분쯤 달린 뒤, 57번 프리웨이를 만나면 사우스 방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90번 임페리얼 하이웨이를 지나 얼마 안가 만나게 되는 요바린다 블러바드 출입구 이스트 방향을 따라 내린다. 요바린다 블러바드를 따라 약 10여 분 정도를 달려 유레카 애비뉴를 만나면 왼편으로 닉슨 대통령 박물관이 보인다.








단층으로 지어진 소박한 이미지. ‘닉슨 대통령 도서관 & 생가’라는 이름을 확인하지 못하면 자 칫 지나칠지도 모를 만큼 조촐하다.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 언덕에 지어진 로널드 레이건 박물관의 위용과 규모와 비교하자면 많은 무리가 따를 수 있겠지만, 내실을 비교하자면 닉슨 박물관도 손색은 없다. 이것은 역사가 성공이라고 쓰는 대통령과 패배라고 쓰는 대통령의 차이일까?

닉슨 박물관에는 20여점이 넘는 화보와 자료들이 어떻게 닉슨이 대통령의 길을 갔는지 보여준다. 그는 휘티어 컬리지와 듀크 대학을 졸업했다. 닉슨은 하바드에서 장학금을 제안할 만큼 수재 였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꿈을 접었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엔 진주만 습격 후 해군에 지원하여 군복무를 마쳤으며, 1946년 공화당에 입당해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후 1952년 상원의원을 지내고,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오르게 된다. 당시 정치에서 주목 받지 못한 캘리포니아 출신이라는 점과 학력 등을 고려해볼 때 닉슨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닉슨은 일 잘하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갤러리 화보 대부분은 서류 뭉치에 파묻혀 있는 닉슨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그의 표정이 늘 어둡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닉슨은 대중적인 인기에서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1960년 J.F.케네디에게 패배한 뒤 정치적인 은퇴설까지 나올 정도로 닉슨은 위기를 겪었지만 1968년 미국 제 3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다시 무대로 오르게 된다.











일벌레였던 닉슨. 박물관에서는 재임기간 중 그의 행보와 특히 냉전 시대 탁월한 외교력을 자랑으로 꼽는다. 그는 부통령 시절에 사상 최초로 소련을 방문해 후르시초프와의 회담을 통해 냉전을 허무는 계기를 열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유명한‘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화해 협력을 필두로 하는 미국의 세계질서전략을 선언했다. 이것은 1972년 북경을 방문해 맺은 미중 수교로 빛났고, 1973년에는 베트남과 파리협정을 맺어, 골치거리였던 베트남 전쟁에 선을 그었다.


그렇지만 닉슨의 세계 평화를 위한 노력과 다양한 업적 등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모두 몰락하게 된다. 박물관에서 본 워터게이트 당시의 기록과 화보 등은 당시에 긴박했던 닉슨의 모습과, 언론들에 비춰진 닉슨을 보여준다. 재선을 노리는 동안 벌어진 이 도청사건은 닉슨이 재선 된 이후에 크게 붉어지면서 청문회에 넘겨지게 되고, 탄핵을 원하지 않았던 닉슨은 결국 스스로 사임하게 된다. 이후 닉슨의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닉슨을 사면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종말을 짓게 된다. 평가가 어떻든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권력을 조종하는 언론의 본보기라고도 평가를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닉슨에게는 불명예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겪은 인물의 연대기를 둘러보고 나서, 그의 생가를 찾았다. 다른 대통령 박물관과 달리 캘리포니아 출신인 닉슨이기에 이곳에는 그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생가에는 실제로 그가 태어났던 침대도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생가 옆으로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곳에 닉슨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 페트리샤 닉슨이 나란히 묻혀있다. 무덤 곁을 지나면서 고인을 떠올려본다. 그는 지금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박물관에는 그 밖에도 대통령 리무진과 전용 헬리콥터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에는 각종 컨퍼런스룸과 미국의 외교전략 등을 배울 수 있는 닉슨 센터가 있다. 한편 닉슨 박물관은 요바린다에서 프로포즈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손꼽히는‘퍼스트 레이디의 로즈 가든’이 있다.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연못으로 구성된 이곳에서 많은 청춘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받지 못하고 떠난 닉슨 대통령. 단순히 워터게이트를 통해 배운 그의 모습과는 달리, 이곳에서 만난 대통령으로서 닉슨은 세계평화와 화해무드에 기여한 행정가이자 외교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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