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LAND PARK @ LOS ANGELES, CA
얼리 센추리 시대, 올드LA의 그 진한 향수를 느끼다
글/사진 LA폴
LA폴입니다. 낭만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그들이 쉴 수 있는 놀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일요일 오후, 남들은 다음날 출근 준비로 TV 앞에 앉아 게으름 떨고 있을 때. 멋진 옷차림과 함께 한 손엔 커피를 들고 1900년대 건축 양식이 주는 클래식에 젖어 한껏 부푼 감수성을 느끼고자 한다면? 빠르게 변하는 LA에서 옛것의 자취는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럼에도 아직 그 느낌이 남아있는 곳이 있지요. 바로 하이랜드 파크입니다.
하이랜드 파크의 역사는 18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땅 주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복잡하니 건너 뛰고, 이 지역은 파사데나와 로스앤젤레스 중간에 자리하다보니 지정학적으로도 중요성이 높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1895년 로스앤젤레스에 속하게 된 하이랜드 파크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본격적으로 철도가 놓이고 사람들의 왕래가 보다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파사데나와 로스앤젤레스의 예술가들이 집중적으로 이 하이랜드 파크로 모여들었고 20세기 초까지 이곳은 로컬 예술인들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1940년경 애로우 세코(110번 프리웨이) 프리웨이가 완성되고, 이곳 주민들은 미드 윌셔나 템플 시티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라티노계 인종이 차고 들어오면서 그들만의 타운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정말 거대한 라티노 거주 구역이 됐고, 그 안에서 대두된 문제 중 가장 심각했던 것이 바로 '갱'이었다고 합니다. 도시는 갱스터들의 주 무대가 되었고 범죄율은 치솟았습니다. 2000년대 초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지금도 '하이랜드 파크'에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2009년에 LA시가 대대적 갱 단속에 나섰고, 그 결과 2010년에는 범죄율이 극적으로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0년대부터 라티노 외 다양한 인종이 하이랜드 파크 주변 일대로 모여들면서 이곳의 인종 분포도도 많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죄율이 줄어들자 하이랜드 파크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예술적 가치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LA시에서도 올드 LA를 다시 복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펼치면서 2018년 하이랜드 파크는 그 옛날 1880년대 이 도시가 가졌던 별명인 '예술가들의 천국'이라 다시 불러도 될 만큼 완전히 다른 도시로 변했습니다.
하이랜드 파크에는 우선 맛있는 디저트가 가득합니다. LA에서 빵 맛있기로 유명한 '미스터 홈즈 베이크 하우스(사진 아래)'는 LA 라치몬드 지역과 이곳 하이랜드 파크, 두 군데에만 자리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젊은 백인 부부는 유모차를 끌고 늦은 오후 빵을 사기 위해 나왔습니다. 이 빵집은 금, 토, 일에는 오후 4시까지 문을 열고 주중에는 2시 30분에 문을 닫는답니다. 다운타운에 직장을 둔 이들 부부는 실버레이크에 살다가 이곳으로 몇달 전 이주했다고 합니다. 고풍스러운 건물 아래로 난 골목을 따라 유모차를 끌고가는 백인 부부. 이 모습 하나만 봐도 하이랜드 파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집니다. 이 빵집과 가까운 곳에 키친 마우스라는 브런치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 집은 빅토리안 풍 느낌을 물씬 풍기는데 내부에는 큰 책장이 자리해 있습니다. 이 동네 싱글족들은 이곳을 찾아와 편하게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즐긴다고 합니다.
하이랜드 파크에는 최근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가게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뭐가 들어올까 궁금했던 가게 중 하나가 있었는데 'COOK BOOK'이라는 마켓이 들어왔네요. 이름이 참 특이한 이 쿡북은 이곳 하이랜드 파크와 에코팍 두 군데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뉴욕에 가면 '딘앤델루카'라는 마켓이 있죠. 몸 생각을 철저하게 하는 이들을 위해 조금 비싸지만 정말 좋은 재료를 취급하는 그런 마켓. 굳이 '딘앤델루카'를 가지 않아도 맨하탄 건물 코너마다 이런 가게들이 참 많습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는데, '쿡북'은 그런 컨셉트의 마켓을 추구합니다. 유기농 야채와 다양한 치즈 제품들. 그리고 신선한 육류, 과일 등이 매장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제 뉴욕이 부럽지 않네요.
한인 브랜드로 세계 패스트 패션 시장을 이끌고 있는 포에버 21. 이 회사가 처음 1984년에 문을 연 매장도 이 곳 하이랜드 파크에 있습니다. 지금도 '패션 21'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데요. 지인에 따르면 여기 매장에서만 파는 아이템들도 있고, 다른 포에버21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여기 오면 있다고도 합니다. 이밖에도 빈티지 스타일 볼링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하이랜드 파크 보울이 있고, 클래식한 멋을 그대로 담아 현대적인 바로 변신한 그레이 하운드 바&그릴도 한번 들려보시면 좋습니다. 또 하나, 하이랜드 파크는 멋진 가구와 소품 거리로도 유명합니다. 대표적으로 '선빔(Sunbeam) 빈티지'는 1940~1960년대를 뜻하는 미드 센추리 시대 빈티지 가구에 촛점이 맞춰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싸지는 않습니다. 빈티지라고 해서 편하게 들어가셨다가 가격 보고 놀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이랜드 파크에는 지금도 많은 가게가 생기고 있습니다. 노스 피겨로아 스트리스를 중심으로 애비뉴 55부터 59에 걸쳐서 번화한 지역들이 애비뉴 60, 그리고 골목 안쪽까지 파고들면서 상점들이 문을 엽니다. 그만큼 이곳이 로스앤젤레스에서 힙한 곳 중 하나라는 것에 의심이 없습니다. 5년 후에는 욕 블러바드와 애비뉴 50부터 시작되어 뻗어나온 상점들이 피겨로아 스트리트에서 만나지 않을까 합니다.
이곳 하이랜드 파크는 LA 매트로 골드라인을 타고 찾아올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LA 한인타운에서 퍼플라인을 타고 유니온 스테이션역에서 파사데나 방향 골드라인으로 갈아타면 이곳 하이랜드 파크 역에 내릴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편리함 덕분에 이곳의 발전 가능성은 더욱 크지 않을까 합니다. 1890년대 이 지역에 뿌리 내린 예술가들의 흔적. 가려진 그 매력들이 벗겨지면서 하이랜드 파크는 지금 LA에서 가장 '힙'한 것을 위한 진행형입니다.
하이랜드 파크 극장을 중심으로 이 지역을 둘러보면 좋습니다
HIGHLAND PARK THEATER
5604 N Figueroa St, Los Angeles, CA 9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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