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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도시 이야기/오렌지 & 리버사이드 카운티

샌클레멘테(San Clemente) - 서부의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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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클레멘테(San Clemente)]


닉슨 대통령, 서부의 백악관이라는 별명 붙인 이국적인 비치 도시. 오렌지카운티의 끝자락. 스패니시 무어 양식의 건축 돋보이고, 기차역 바로 앞 해변 일품 





끔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즐거움을 얻곤 한다. 오렌지카운티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어촌 샌클레멘테가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샌클레멘테에 한번 가보라는 지인의 조언을 들을 때만해도 그런 동네가 있는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나름 캘리포니아 해안 도시를 다 꿰고 있다고 했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동네였다. 지도를 펴고, 등잔 밑이 어두울 정도가 되야 샌클레멘테를 찾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다.


로스엔젤레스에서 5번 프리웨이 사우스 방향을 타고 40여분을 달리다 보면 낯익은 비치 도시들의 이름이 지나간다. 라구나비치를 지나고 데이나 포인트를 스쳐간다.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힘겹게 달려온 1번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CH)는 데이나 포인트에서 5번과 만나면서 명을 다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길이다.


이제‘Avenida Presidio’라는 출입구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을 수 없이 다녔건만 이런 출입구 이름은 본 기억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샌클레멘테까지 앞으로 3개의 출입구를 지나라는 간판이 보이자 조금은 안심이 된다. 드디어 프리웨이를 벗어나 작은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작고 아담한 상점들이 저 멀리 바닷가를 향해 줄지어 늘어선 광경이 정말 아름답다. 라구나비치가 좋다고 하지만 너무 작은 지역에 상점들이 몰려있는 것이 아쉬웠고, 데이나 포인트는 반대로 너무 아기자기한 맛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샌클레멘테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두 비치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모두 채워진 첫인상을 건넨다. 하얀 벽과 붉은 지붕의 집들과 상점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몇 년 전 방문했었던 스페인 남부의 어느 한 어촌 마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분위기를 돋군다.


다운타운 샌클레멘테는 해변가를 제외하고는 시내에서는 2시간의 무료 거리주차를 허용한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샌클레멘테 아트 갤러리 옆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놓으면 안심이다. 이곳에 차를 대면 피어까지는 걸어서 약 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살짝 언덕을 넘는 경사를 지나면 이내 내리막길로 바뀌면서 눈앞에 드넓은 태평양이 한눈에 펼쳐진다.

 

샌클레멘테는 스페인 원정대가 도착하기 전엔 후안네노 인디언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후로 주변에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 미션이 세워지면서 원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1920년 중반까지 이곳은 여러 원정대나 탐험가들이 거치면서 소소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다 1927년 워싱턴주 시애틀시의 전 시장이었던 올레 핸슨이 본격적으로 재정과 설계를 담당하면서 이곳은 고급 휴양 리조트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클래식 스패니시 스타일이 핸슨에 의해 주도되면서, 도시는 점차 아름다운 해양 도시로 변해갔다. 1968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이곳에 휴양 별장을 사들이면서 샌클레멘테를‘서부의 백악관’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는 나름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서퍼들은 파도를 즐기고, 해변에서는 가족 나들이가 한창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가? 메모리얼 데이 휴일임에도 적당한 인파가 몰려있다. 북적거리는 여느 캘리포니아 해변에 비하면 정말 고즈넉하다는 표현이 알맞다. 해변은 모래와 함께 작은 자갈이 해안선을 따라 깔려있다. 자갈과 모래가 이렇게 한번에 어울리는 곳이 있었던가? 파도가 빠져나가면서 자갈과 뒤섞이는 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아름다운 소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샌클레멘테 바닷가는 해안선을 따라 기찻길이 함께 놓여져 있다. 샌디에고로 향하는 암트렉 퍼시픽 서플라이너 열차가 이곳을 따라 달린다. 기찻길은 저 멀리 놓여져 흔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차 안에서 손을 뻗으면 해변에 닿을 듯 가깝다. 기차 건널목을 지나 해변에 닿을 때 저 멀리 기차의 경적이 울린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어쩌면 정동진역의 모습이 스쳐갈 것이다. 플랫폼에서 내리는 사람과 오르는 사람들. 미 서부 기차 여행이 산타바바라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진짜 별미는 여기에 있는듯하다.









피어는 낚시꾼과 서퍼들의 천국이다. 피어입구에 자리잡은 파란 지붕이 눈길을 끄는 피셔맨즈레스토랑은 이 지역 맛집으로 통하는데, 레스토랑과 선셋바가 피어 양 옆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곳에서 맛 본 크렘차우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느꼈던 약간은 비리면서 고소한 맛을 연상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식당은 시애틀하고 이곳, 미서부에서 단 두 지역에만 존재한다. 초대 도시 개발을 담당했던 이가 시애틀 전 시장이었으니, 시애틀과의 인연이 이해가 간다.

 

피어 끝에는 작은 매점이 자리했다. 캘리포니아에 자리한 피어들을 걷다보면 그 끝에서 늘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리워지는데, 샌클레멘테 피어엔 따뜻한 핫초콜릿이 준비돼 있다. 크램차우더와 새우 요리를 맛보고 나서 즐기는 따뜻한 차 한잔은 그 어떤 미식가가 오더라도 불평이 없을 듯 하다.






샌클레멘테 바닷가는 북쪽 방향으로 절벽을 따라 지은 산책코스와 구름다리도 유명하다. 기찻길과 함께 뛰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 멀리 지는 석양과 함께 한폭의 그림과 같다. 하루쯤 머물고 싶다는 느낌이 너무나 크다. 이곳에서 찾은 한 모텔은 전 객실이 바닷가를 보고 있는데, 지는 태양과 쏟아지는 별들의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몇성급 호텔보다 값어치를 한다. 굉장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샌클레멘테를 떠난다. 이만큼 깊은 인상을 주는 도시가 근래에 있었을까도 싶다.


다음번에는 기차로 한번 방문해보자는 결심도 선다. 기차를 타고 다시 찾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여행기를 쓰다 보면 흔하게 쓰는 표현으로“숨겨진 보석”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샌클레멘테에게는 그 표현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다시 다운타운을 거닐며 샌클레멘테를 놓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본다. 조금 더 여유있게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여기 이 모습 그대로 떼어내보면 정말, 스페인 남부의 어느 휴양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일듯하다. 우연히 자리한 의자에 앉아 하루를 돌아본다. 사랑은 희생의 표현이라는 의미가 가슴 한 구석을 뭉클하게 만든다. 저 멀리 바닷가를 바라보며 또 한번 도시의 맛을 음미해본다. 무슨 맛일까? 처음에는 설레임, 이내 달콤함,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쉬움이라는 표현이 맛을 것 같다. 떠나는 발길을 자꾸만 붙잡는 샌클레멘테. 이 느낌을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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